아담 안에서 태어나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만들어지다.
우리 모두의 내면에는 무엇인가가 깨져 있다.
당신이 더 나은 것을 알고 있음에도 당신 안에서 무엇인가 잘못된 방향으로 끌려지고 있는 느낌을 가져본 적이 있는가? 어쩌면 당신은 분노 가운데 당신이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잔인한 말을 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당신이 부끄러워 하는 선택을 했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당신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당신 안에 있는 어떤 것이 올바른 선택을 하는 것을 막기 위해 싸우고 있는 것처럼 느낄 수도 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이 느낌은 첫 번째 가족만큼이나 오래되었다. 성경은 그것에 대한 참된 답을 가지고 있다. 이야기는 아담이라는 남자와 하와라는 여자가 함께 있었던 에덴 동산에서 시작된다. 성경은 또한 사도 바울이 마지막 아담이라고 부르는 예수 그리스도를 제시한다. 성경은 인간의 잘못된 점에 대한 전체 이야기가 아담으로부터 시작되었으며, 하나님은 인간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예수님을 보내셨다고 말하고 있다. 실제적으로 죄가 모든 것을 깨뜨렸다. 그리스도는 모든 것을 그분 안에서 회복시키신다.
첫 번째 아담: 아름다운 것을 위해 만들어지다.
창세기 1:26-27은 하나님이 인간을 즉 남성과 여성 모두를 평등하게 그 분의 형상 가운데 만드셨다고 말하고 있다. 신학자들은 이것을 이마고 데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는 라틴어이다. H. 오튼 와일리는 하나님의 형상이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설명한다. 첫째, 생각하고, 느끼고, 선택하는 능력이 우리를 인간으로 만든다. 둘째, 우리는 완벽하게 하나님을 향해 가리키고 있는 사랑과 거룩함으로 가득찬 마음을 가지고 있다.
당신이 가게에서 찾을 수 있는 그러한 종류의 새 거울을 생각해 보라. 그것은 깨끗하고, 선명하며, 완벽하다. 당신이 그것을 볼 때, 정확히 거기에 무엇이 있음을 볼 수 있다. 아담과 하와는 그 거울과 같았다. 그들 안에 있는 모든 것, 즉 사랑, 선함, 순결이 하나님을 완벽하게 반영했다. 밀드레드 뱅스 와인쿠프는 사랑의 신학에서 이렇게 말한다. “사랑은 거룩함의 본질적인 내적 특성이며, 거룩함은 사랑과 별개로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사랑, 바로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깊고 참된 사랑을 위한 것이다.
어떻게 거울이 훼손되었는가?
이제 창세기 3장이 나오는데 아담과 하와는 동산안에 있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모든 것을 주셨다. 단지 한 가지 규칙이 있었다. 그들이 그것을 깨뜨렸다. 그들이 그렇게 하였을 때, 그들 안에서 그리고 우리 모두의 안에서 무엇인가 균열이 일어났다.
아담은 단순히 나쁜 선택을 한 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전체 인류의 대표자였는데 이는 한 커다란 부족에 있어서 그 족장의 결정이 그의 이름으로 대표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과 같다. 족장이 실패했을때 모든 가족이 그것을 느끼게 된다. 아담이 타락하였을 때, 우리 모두 그와 함께 타락한 것이다. 리처드 S. 테일러는 아담의 죄가 모든 인간의 마음 안에 "자기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편견, 단순히 약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함에 대한 적극적인 반대인 도덕적 굴곡"을 남겼다고 말한다.
와일리는 창세기 5:3을 들어서, 성경은 아담이 더 이상 하나님의 형상이 아니라 “자신의 형상으로 아들을 낳았다”고 말하고 있다. 그 거울은 한 가운데에 금이 가게 되었다. 와일리는 말한다. "아담으로부터 나온 모든 인간은 그 안에 원죄라는 포괄적인 악함을 받았는데 아담안에 있는 인류의 죄인 것이다" . 그 이후 태어난 모든 아기는 그 균열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것이 바로 바른 일을 하는 것이 그토록 어려운 이유이다. 그것은 단순히 나쁜 습관이나 나쁜 이웃의 문제가 아니다. 더 깊은 어떤 것, 모든 사람을 계속 망치고 있는 세계적 유행병과 같은 어떤 것이다. 차이점은 이것이 세대에 걸쳐 일어나는 유행병이라는 것이다.
마지막 아담: 예수님이 모든 것을 변화시키시다.
그러나 여기에 이야기가 놀랍게 되는 지점이 있다. 하나님은 균열 있는 거울을 그대로 우리에게 남겨 두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두 번째 아담, 새로운 아담으로 보내셨다!
바울은 로마서 5:17에서 죽음이 한 사람인 아담을 통해 왔듯이, 생명도 한 사람 예수님을 통해 왔다고 말하고 있다. 아담은 깨어진 사람들의 가족을 시작했다. 예수님은 회복된 사람들의 새로운 가족을 시작하신다.
리처드 E. 하워드는 바울이 모든 역사를 두 시대로 보고 있다고 설명한다. 아담의 시대: 죄가 지배하고, 사망이 지배하고, 모든 것이 깨졌다. 그리스도의 시대: 은혜가 다스리고, 생명이 다스리며, 회복이 일어나고 있다. 하워드는 그리스도인이 "아담의 정권으로부터 옮겨졌다. ...은혜가 통치하고 생명이 통치하며 의를 나누어 받는 그리스도의 정권으로 옮겨졌다"고 말한다. 그것은 끔찍한 질병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것이다.
로마서 6:4은 예수님이 죽음에서 일어나셨기 때문에 우리는 이제 “새로운 생명 가운데서 걸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것은 단순히 작은 개선이 아니다. 그것은 완전히 새로운 존재의 방식, 하나님이 처음부터 우리를 위해 항상 의도하신 방식이다.
온전 성결: 깊은 정화
여기에 질문이 하나 따라온다.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면, 왜 그리스도인들은 여전히 죄로 끌려 가고 있다고 느끼는가? 왜 그 거울은 여전히 가끔씩 균열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때, 그가 우리 안에서 통치하시지만, 우리가 그의 통치를 받아들이지 않기도 한다. 처음 당신의 삶을 예수님께 드릴 때, 하나님은 당신의 모든 죄를 용서하신다. 그것은 놀랍고도 실제적인 것이다. 그러나 문제의 뿌리, 즉 내면에 있는 아담적 경향성으로 그 거울에 있는 균열은 그 첫 번째 순간에 완전히 제거되지 않았다. 그것은 여전히 그 저변에 있고, 여전히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을 때, 우리는 그동안 익숙해 왔던 대로 우리 자신의 힘으로 살아갈 것을 시도한다.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방법으로 살아간다.
하나님은 이것에 대한 답을 가지고 계신다. 그것을 온전 성결이라고 부른다. 윌리엄 M. 그레이트하우스는 말했다. "성결 신학은 요한 웨슬리에 의해서 시작되지 않았다. 성결 신학은 그리스도와 함께 시작되었다." 온전 성결이란 성령이 당신의 마음 깊숙히 들어가셔서 오직 그분 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하시는 순간을 말한다. 이 때 아담의 죄된 유산, 곧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는 내적 왜곡을 제거하시고, 당신을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완전히 채우신다. 거울의 그 균열은 안쪽으로부터 복구된다.
테일러는 그것을 간단히 설명한다. "중생은 죄의 지배를 깨뜨린다. 온전 성결은 그 뿌리를 제거한다. 이 두 가지 모두 하나님이 모든 믿는 자를 위해 의도하신 은혜의 완전한 역사에 있어 필수적인 요소다." 와인쿠프는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지 우리가 확실히 이해하도록 돕는다. 그것은 당신을 더 작고, 더 공허한 사람으로 만들지 않는다. 그녀는 온전히 성결된 사람이 "전체 자아"라고 말한다. "그리스도를 향한 전체로 조절된 사랑의 지배를 받는 다스림의 사랑 것을 다스리는 사랑의 지배 아래, 깨끗하게 된 자아"이다. 당신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완전한 당신 자신이 된다.
하워드는 그 열쇠가 더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것은 더 깊은 곳에서 항복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도덕적 노력으로 그 자신의 성결을 달성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이미 승리하여 얻으신 것 가운데로 믿음으로 들어가도록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당신은 하나님께 당신의 마음의 일부가 아니라 그 모든 것을 드린다. 하나님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하신다. 나사렛 교회는 '교리와 장정'에서 이것을 "하나님의 행하심"이라고 부르는데, 그것에 의해 믿는 자들이 원죄 또는 부패로부터 자유롭게 되고, 하나님께 대한 완전한 헌신의 상태로 옮겨지며, 사랑의 거룩한 순종이 완전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단지 시작에 불과하다.
온전 성결은 끝이 아니다. 그것은 그 문이다. 테일러는 "그 길의 끝이 아니라 거룩함이라는 고속도로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이 후 당신은 성장한다. 당신은 배우게 된다. 당신은 매일 매일 예수님을 더 닮아간다.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운 뿌리를 가지고 있는 망고 나무처럼, 당신은 이전에는 생산할 수 없었던 열매를 생산하기 시작한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3:18에서 그것을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로 표현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 회복이 완료될 것이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린도전서 15:22). 죽음에서 살아나신 그 동일한 예수님은 우리도 다시 살리실 것이다. 아담이 깨뜨린 모든 것을 하나님은 회복하시키실 것이다. "너희를 부르신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데살로니가전서 5:24).
당신은 깨어진 상태로 머물 필요가 없다.
당신은 아담 안에서 태어났다. 이 땅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러했다. 당신은 안에 균열이 난 거울을 가지고 이 세상에 왔다. 그러나 그것이 당신의 이야기의 끝이 아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아담이며, 그는 정확히 이것을 위해 오셨다. 그는 완벽하게 살았다. 그는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 그는 다시 살아났다. 그리고 이제 그는 당신에게 새로운 가족, 새로운 마음, 새로운 삶을 제공한다. 단순히 당신이 한 일에 대한 용서뿐이 아니라 당신의 안에서 일어나는 참된 변화를 이루신다.
이 변화는 당신이 당신의 삶을 그리스도께 드릴 때 시작된다. 그러나 당신이 모든 것을 성령께 포기하고 온전 성결을 받을 때 그것은 더 깊어진다. 균열이 난 거울이 치유된다. 하나님의 형상, 당신이 항상 지니도록 만들어진 그 것이 다시 빛나기 시작한다. 와인쿱이 썼듯이, "사랑은 긴급함을 위기로 이끈다." 하나님은 바로 지금 이 순간 당신 안에서 이 깊은 일을 하실 준비가 되어 있다.
당신은 아담 안에 머물 필요가 없다.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은 새롭게, 정말로 완전히, 완전히 새롭게 될 수 있다. 그것은 오늘 시작된다.
Christian Sarmiento 나사렛 교회의 총감독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