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칼빈

존 칼빈

"다른 이들에 대한 사랑의 빚을 제외한 다른 모든 빚은 다 갚아야 한다. 사랑의 빚은 결코 다 갚지 말아야 한다!” (로마서 13:8, TLB번역). 부채에 대한 언급은 종종 우리를 재정적 의무에 관한 생각으로 이끈다. 바울은 신자들에게 우리가 다른 빚들도 지고 있음을 상기시켜준다. 나사렛교회는 웨슬레안-아르미니안 신학 전통 가운데에 있다. 따라서 우리는 제이콥 아르미니우스(1560-1609)와 요한 웨슬레(1703-1791)에게 감사의 빚을 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영적 지도자들이 그들의 사상을 단순한 사고를 통해 만들어 낸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웨슬레는 존 칼빈(1509-1564)의 글들을 해석한 아르미니우스의 저작들에 대해 상당히 일치하는 생각을 가졌다. 많은 웨슬레주의자들은 우리의 신학이 얼마나 많이 칼빈으로부터 왔는지를 알게 되면 놀랄 것이다.

            요점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말 말한다면 존 칼빈은 칼빈주의자가 아니었다! 여러 사건들이 낯설게 발생하면서 칼빈의 학생들은 네덜란드의 목사이자 신학자였던 제이콥 아르미니우스의 작업에 반대하기 시작했다. 아르미니우스는 자신의 세대를 위해 칼빈의 글들에 대한 해석을 제공했다. 그러자 칼빈의 제자 중 일부가 칼빈의 생각을 아르미니우스와 다르게 해석했는데 이것이 칼빈주의가 되었다. 웨슬레는 자신의 시대에서 설교하고 가르칠 때 아르미니우스의 해석에 밀접히 동의하고 있었다.

            칼빈의 두 권으로 구성된 '기독교 강요' 는 개신교에 있어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저작물들 중 하나로 남아 있다. 다음은 오늘날에도 나사렛 사람들이 믿고 있는 칼빈의 교리 몇 가지이다.

1. 칼빈은 모든 기독교 신학의 시작점이 되어야 하는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에 대한 논의로 그의 책 '기독교 강요'를 시작한다. “지혜의 참된 빛, 건전한 덕성, 모든 선의 충만함, 의의 순결은 오직 주님께 있도다.”[1] 우리는 지혜와 능력과 순결의 하나님을 인식하고 예배해야 한다. 하나님은 시대를 통해 인류를 향하여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레위기 19:2) 라고 부르신다. 평범한 인간들에게 어떻게 그 일이 가능할까? 하나님은 그 길을 제공하신다.

2. 죄인들은 회개와 믿음을 통해 신자가 된다. 그 순간에 하나님은 의롭다 함과 초기 성결을 허락하신다. 신자들은 두 가지 선물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한 가지, 즉 예수 그리스도를 받는다.

3.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됨은 오직 믿음을 통한 은혜에 의해서 만이다(로마서 1:17). 그것은 결국 거듭남(새로 태어남), 죄 사함, 하나님과 함께 올바로 서게됨으로 인도한다. 신자들은 더 이상 최후 심판을 두려워 필요가 없다. 그들은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었다.

4. 성령의 역사로 인한 성결에 대한 칼빈의 비전은 신자들이 그리스도를 닮게 되는 것으로 인생 전체의 과정을 포함한다. 성결은 신자들이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완전히 바치도록 요청한다.(로마서 12:1-2; 갈라디아서 2:20). 정결한 성결은 결과적으로 그리스도인의 일상적인 삶에 있어서의 바른 선택과 말과 생각과 행동에서 죄를 피하는 방식으로 이어진다. 또한 그것은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찬 마음과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전적인 순종을 의미한다. 성령은 예수님의 부활의 권능을 통해 의로운 삶을 가능하도록 만든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역사이지 인간이 얻어 내는 것이 아니다. 신자들은 믿음에 사롭잡힌 첫 날부터 죽음의 영광이 일어날 때까지 그들의 모든 힘을 그리스도를 닮는 일에 쏟는다.

5.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바른 교리를 믿는 것 이상의 것을 포함한다. 여기에는 변화된 마음과 생활 방식이 포함된다. “이것은 혀의 교리가 아니라 생명의 교리이다.”[2] 믿음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뜻을 행함에 있어 믿음과 사랑이 함께 힘을 합치는데, 이는 신자들이 사랑을 통해 온전케 되기 때문이다.

6. 칼빈은 신자들이 알려진 모든 죄를 거부해야 할 필요에 대해 열정적으로 기록했다. 그는 만일 영혼의 모든 능력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채워진다면 조금이라도 하나님을 떠나고 싶어하거나 그렇게 생각할 여지가 없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하나님이 계시는 성소가 마구간과 같이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찬 것은 하부적절다."[3]

7. 신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경험한다. 이 자유는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것은 은혜로 우리를 죄의 속박으로부터 그리고 죄가 우리를 지배하는 기억들에 매이는 것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준다. 그것은 두려움에 떠는 양심을 하나님 앞에서 잠잠케 만든다. 칼빈은 하나님이 신자에게 선을 행할 수 있도록 자유를 주신다고 바울이 선언한 로마서 6장에 대해 설명을 제공한다.[4]

            요한 웨슬레와 나사렛 사람들은 오늘 칼빈의 사상에 대해 전체는 아니지만 많은 부분에 동의하고있다. 칼빈은 거룩한 삶을 사는 것과 그리스도를 닮도록 자라는 것에 대해 아름답게 이야기했다. 그는 심지어 그리스도인의 완전 이라는 우리의 언어에 대해서도 암시했다.[5] 그러나 그는 신체에 대한 플라톤의 가르침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었다. “우리가 우리 몸의 감옥에 거하는 동안 우리는 우리의 타락한 본성의 결함들과 끊임없이 싸워야한다.”[6] 몸을 영혼의 감옥으로 보는 것은 칼빈이 이 땅의 삶에서 성령의 깨끗게 하시는 능력으로 말미암아 육체의 본성에서 구원받은 신자가 된다고 선언하는 능력을 제한한다.

            우리의 차이점들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존 칼빈에게 그의 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신자들을 위해 기독교 사상을 발전시켜 온 것에 대해 감사의 빚을 지고 있다.

프랭크 무어 (Frank Moore)는 2013년부터 2021년까지 나사렛교회의 총 편집인으로 일했다.

 

 

 

[1] 존 칼빈, 기독교 강요, 번역. Ford Lewis Battles (Philadelphia: The Westminster Press, 1960) I.1.1.

[2] 칼빈, 기독교 강요, III.2.7.

[3] 칼빈, 기독교 강요, III, 6.2.

[4] 칼빈, 기독교 강요, III.19.6.

[5] 칼빈, 기독교 강요, III.6.5.

[6] 칼빈, 기독교 강요, III.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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