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을 전달하기: 제자도를 위한 세대를 아우르는 모임

믿음을 전달하기: 제자도를 위한 세대를 아우르는 모임

자라면서 나는 할아버지의 텃밭에서 자주 시간을 보냈다. 그는 자신의 텃밭을 진지하게 생각했으며, 어린 손자가 달려들어 손을 더럽힐 있는 일거리를 항상 준비해 놓으셨다. 어두워 벌레들 위에 소금을 붓는 것부터 (내가 가장 좋아한 ) 잡초 제거와 물주기, 작물 수확에 이르기까지 시간을 보낼 있는 다양한 일들이 있었고 나는 할아버지께 이렇게 배우는 것이 감사했다.

            할아버지는 종종 자신의 젊은 시절 이야기, 그의 가족이 극복해야 했던 어려움들, 제가 만날 기회가 없었던 다른 친척들, 그리고 그의 성장기와 받은 학교 교육에 대해 이야기해 주셨다. 그는 교실이 하나만 있는 학교 건물의 시대에 자랐다. 어렸을 점이 나를 매료시켰다. 학교 전체가 교실에 모였는데, 10 또는 이상 나이 차이가 나는 다른 학생들과 어울려 배우고 놀고 상호작용하는 그러한 교실이었다.

내가 좀 더 어렸을 때 이것은 단지 호기심을 자극했지만, 나이가 들어가며 교육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이 아이디어는 매력적이고 놀라운 것임을 발견하게 되었다. 교실이 하나인 학교는 매일 서로간의 가까운 거리와 교과 과정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 대해 또 그들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기회들로 가득했을 것이다. 그리고 8학년 또는 9학년까지 학교에 있었다 해도 그 아래 위로 10년 정도의 범위 안에서 가깝게 지내게 되었을 것이며 이는 전체 세대를 연결하는 관계와 공동체의 원을 만들어 냈을 것이다. 이러한 구성은 사실 교사의 부족등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이루어졌겠지만, 이 패러다임 내에서 구축되었을 관계성과 상호작용은 지금 우리 문화에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세계적으로 도시화가 진행됨에 따라, 그러한 교육 스타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어쩌면 유익함 보다는 해로움이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갈수록 교실로 구성된 학교가 우리가 이상 경험하지 못하는 상호작용의 유형을 제공했다고 분명히 믿는다. 우리가 발전하고 성장함에 따라 다양한 연령층 사이의 의도적이고 장기적인 상호작용의 유익말이다.

            이것이 기독교 제자도의 본질이다: 서로의 삶에 뿌리를 내려 성공과 실패를 목도하는 ; 우리 주변 사람들의 습관과 성향을 이해함으로써 계속해서서로 격려하고 서로 세워 세우는 ”(데살로니가전서 5:11). 이러한 유형의 연결은 함께 모이는 지속적인 접촉 없이는 발생할 없다. 이러한 모임에 참여할 풍부한 관계, 기술, 영적 통찰력, 열정들이 교환되며, 이는 인구통계학적으로 공통점에 기반한 어떤 모임보다 단단히 공동체를 하나로 묶어 준다.

            성령의 권능을 통해 우리는 공유하는 믿음과 행동, 서로의 상호작용을 통해 공동체로서 함께 성장하지만, 이러한 일을 정기적으로 있는 기회들이 점점 줄어드는 같다. 《외로움의 유행병》 같은 책들은 현재의 문화적 풍토에서 우리의 연결과 연결될 기회들이 증발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비추어 주었다. 그리고 인구통계에서 보여지는 대로 사람들의 외로움이 증가하면서 동시에 각자의 세대 밖의 사람들과 의미 있는 관계를 세워 나가는 사람들의 능력 또한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이전의 그리스도인들은 이와 같은 상황에서 무엇을 했을까? 내가 연구 중에 우연히 접하게 된 디트리히 본회퍼의 책들에서 그 예들을 볼 수 있었다. 본회퍼의 사역은 두 차례의 세계 대전 그 중간의 시대에 주로 있었는데, 그 때는 말 그대로 세대간의 격차가 있었던 시대였다. 많은 나라들이모든 전쟁들을 끝내기 위한 그 전쟁에서 수백만 명의 젊은이들을 잃었으며 곧 뒤따른 기근과 전염병까지 겹쳐서 그 전쟁이 끝날 때에는 그들의 문화에 커다란 구멍이 생겨났다. 그것은 어떻게 제자도를 실천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하도록 했다. 우리는 어떻게 공동체를 세우는가? 특히 우리 안에서 연결을 맺어야 하는 한 세대 전체(또는 그 이상)를 잃었을 때 더욱 그렇지 않았을까? 본회퍼는 이 점을 염두에 두었으며 그의 저서 《제자도의 비용》에서 우리에게 놀라운 지혜를 주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 그가 처음 강조한 부분은 신앙 공동체 안에서 영적 훈련의 견습생으로서 보냈던 시간들에 대한 이설명다. 직업 견습생과 달리 견습생으로서의 영적 훈련은 단순히 교사와 학생의 관계로서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협력하는 종들이 되어 서로간에 양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는 심지어 견습생 제도는구성원들을 사역자로 세우는 안수과정처럼 여겨져야 한다고까지 말한다. 우리 목회자들이 책임을 나누는 구성원들, 동기들, 멘토들과 함께 안수 과정을 거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교회 생활의 핵심 부분에 있어서 이 견습 제도를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번째 요점은 이러한 유형의 관계가 성장하고 번성하기 위해서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신앙 공동체에 있어서 관계들은 확장되고 탐구하며 실수를 저지를 있는 여지를 필요가 있다. 우리는 교회 내에 있는 견습생 제도의 결과물에 대해서 강조하고, 세대를 연결시키는 영광스럽고 경건한 관계들에 대해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이것은 우리 교회 내에서 많은 다양한 변화로 이어질 것이다. 우리가 교회에서 견습 문화를 정상화 하도록 추구해 나갈 , 우리는 우리 교회의 성격과 특성들이 앞에 서게 되는 것을 보게 것이다. 우리 공동체들을 통틀어 표준화를 추구하기보다, 우리는 우리 관계의 특별한 본질에 대해 발견해야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동체의 아름다움이며, 이는 교회 지도자들이 계속해서 다른 사람들을 우리의 전문성의 원 안으로 초대하고자 하는 헌신에서 시작한다. 교회들은 종종 그 중요성으로 인식되는 말하기, 노래하기, 가르침 등 기술들의 위계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기술들은 종종 교회를 섬기는 일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있어 제일 앞에 자리잡게된 다. 그러나 견습 모델에서 우리 모두는 다음 세대의 신자들에게 기여할 의미 있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게 된다. 그것은 누군가를 여러분 곁에 오게 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여러분과 시간을 보내고 상호작용하며, 우리의 믿음 안에서 성장하고 성숙하고, 서로를 지원하도록 초대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런 다음 교회는 이러한 관계들이 성장하여 이러한 기술과 전문 지식을 믿음의 공동체에 보여줄 수 있도록 공간과 시간을 제공하는 책임을 맡는다. 결과적으로 전체 교회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관계와 감사 안에서 성장하며, 성도들은 서로의 성숙과 사역의 깊이 가운데서 성장한다.

 

조나단 이그스티는 인디펜던스 트리니티 나사렛교회의 담임목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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